사실 많은 종류의 격변이 그렇듯이, 탈냉전은 의미의 위기를 만들어낸 사건이 아니었다. 의미의 위기는 이미 계몽주의 투쟁의 마지막 장이던 냉전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의미의 위기에 따른 세계 각지의 대응들은 냉전 체제 자체를 공격하면서 탈냉전을 열어젖혔다. 따라서 탈냉전은 이미 존재하던 의미의 위기가 만들어낸 현상이자, 그 위기를 한껏 증폭시킨 계기이기도 했다.

이전의 글에서 설명하였듯 전후 사회는 본질적으로 풍요와 발전의 시대로 표상되었다. 1945년을 기점으로 19세기의 ‘좋았던 시절(Belle Epoque)’을 산산조각 냈던 거대한 세계대전과 학살의 소용돌이가 끝나고, 미국과 서유럽 일각의 소수 지배층만 독점하던 산업 기술의 혜택이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2차 산업혁명과 포디즘, 내연기관과 전기를 받아들이면서 1930년대의 대중사회는 총력전을 대비하기 위한 동원체제와 유토피아적인 이데올로기 기획을 수용하는 사회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20세기의 남은 50년 동안 대중사회를 특징 짓는 가장 큰 상징은 소비였다. 특히나 과거의 기억이 없이, 전후의 풍요 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는 소비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였고, 전통의 제약에서 벗어난 새로운 자유의 문화에 깊이 빠져들면서 자신을 정의했다.

문제는 모두가 풍요 속에서 소비와 대중문화로 삶의 의미를 추구할 수는 없었다는 데 있었다. ‘68혁명’을 전형적인 형태, 즉 전후 세대가 표출한 사회문화적 자유의 외침으로 경험한 국가들은 제1세계라고 불리는 선진 산업 국가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 전후 세대는 상당히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제2세계에서 전후 세대는 여전히 과거의 준군사적 동원체제를 강요하고 있는 공산당 정권에 때로는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때로는 소극적인 일탈을 즐겼다. 이들은 사회와 문화적 자유화를 요구하기도 했으나, 그를 위해서는 먼저 정치적 자유화와 풍족한 생필품 공급 등의 정치경제적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제3세계에서 상황은 더욱 달랐는데, 그들은 제국주의 시대 이후의 새로운 세계, 즉 탈식민적 세계를 건설하고자 고군분투했다. 어떤 국가에서 그 노력은 미국이 후원하는 현지 정권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드러났고, 다른 국가에서는 민족주의적 정부의 지도 하에 열렬히 근대화를 위한 동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났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의 대의는 자체적인 힘으로 산업화와 도시화를 달성하여 더는 서구에 뒤처지지 않는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2세계에서의 68은 공산당 체제의 개혁을 얘기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으로 상징되었고, 제3세계에서의 68은 미국에 맞서는 민족 해방 운동의 기지로서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남 전쟁으로 상징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파리나 프랑크푸르트의 대학생들이 이야기하는 68과는 전혀 다른 요구를 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를 막론하고 전후 세대의 요구는 냉전 질서의 틀에서 어느 정도 봉합될 수는 있었다. 물론 소위 ‘위기의 1970년대’로 불리는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이를 ‘봉합’으로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라하의 봄은 브레즈네프 독트린에 따른 바르샤바 조약기구군 투입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제3세계의 동란은 세계 질서의 전체적 차원에서 본다면 제한적 영향력만을 행사하였고, 대부분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대국의 경쟁이라는 맥락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제1세계의 68운동은 유의미한 정치경제적 대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고사했으며, 결과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보수주의자들의 강한 결집을 불러오면서 좌파 정치의 급속한 퇴조로 이어졌다. 오일쇼크와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동아시아 경제의 급속한 성장이 경제적 차원에서 1970년대와 그 이후를 뒤흔들 것이었으나, 적어도 정치적 차원에서 보았을 때 제1세계와 제2세계의 정치적 결속력은 흔들림이 없었다. 1970년대를 상징하는 미소 데탕트는 양 진영이 이제는 서로를 존재론적으로 사라지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실현된 결과물이었다. 이는 상대 진영의 안정성이 견고하다는 판단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