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무엇인가 (5): 팬덤, '의미의 공동체'
팬덤은 '신앙'으로 움직인다
“내가 평범한 것에 고귀한 의미를, 관례적인 것에 신비로운 외관을, 알려진 것에 미지의 것이 갖는 위엄을, 유한한 것에 무한자의 환상을 줄 때 나는 그것을 ‘낭만화’하고 있다.”
- 노발리스(Novalis, 18세기 말 독일의 낭만주의 문인이자 사상가)
후기 냉전 시대인 1970년대와 1980년대 전후 세대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자. 그들은 부모 세대가 겪었던 전쟁의 참화로부터 자유로웠다. 국가에 따라 달랐지만 상대적인 안정과 풍요 속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농촌에 살았을 부모 세대와 달리 그들은 도시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설령 농촌에서 태어나긴 했을지라도 얼마 안 가서 도시로 이주할 가능성이 높았다. 역시 지역과 국가에 따라서 실제 모습은 천차만별이었지만, 도시는 대체로 농촌이 줄 수 없는 기회를 주었기에 사람들을 빨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성이 본격적으로 보편화되는 새로운 시대는 전통적인 삶의 양식과 가치 체계를 흔들어 놓았다. 오랜 기간 전승되어 온 전통적 문화와 가치들은 무한한 선택의 자유, 국경을 횡단하는 미디어의 자극이 주어지는 도시 속에서 위협을 받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위협들은 이미 18세기와 19세기부터 나타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이후의 세계에서, 전통에 가해지는 위협은 도시성을 경험하는 인구 집단의 크기라는 양적인 차원에서도, 전통적 삶의 양식을 해체하는 각종 기술적 도구들의 발명과 확산이라는 질적인 차원에서도 과거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새로운 세대는 전후 사회 속에서 매우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갈래의 길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 있었다. 하나는 현대의 소비 사회가 부추기는 불안에 맞서 전통적 삶의 양식을 재해석하여 추구하는 길이었다. 물론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고 현대의 경이로운 기술을 포기하는 삶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통 사회에서 제공해주던 것, 즉 친밀감을 주는 사회적 관계망과 삶의 표대로 삼을 수 있는 메시지만큼은 도시 사회에 맞는 방식으로 다시 복원해내야만 했다. 종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부활을 겪었다. 미국은 종교의 부활이 자신들이 후원하는 동맹국 정부를 전복하는 등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가들은 신심의 회복이라는 경향이 무신론 제국인 소련과 맞서 싸우는 데 유용하다고 판단했기에 종교인들의 동맹을 자처했다.
물론 그와 반대되는 흐름도 있었다. 이는 종교의 부활보다 훨씬 눈에 띄는 현상이었고, 전후 사회의 변화와 부합하는 것 같은 흐름이었다. 바로 소비 사회에 적합한 화려한 대중문화를 향한 몰입이었다. 이 대중문화는 전후의 풍요 속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들이 여전히 과거의 가치로 사회를 규율하려 하는 기성세대에 저항하면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라디오와 TV를 통해 결합된 지구적인 통신 네트워크와 음악 자본을 통해 미국의 전후 대중문화는 말 그대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문화적 엄숙주의, 성에 대한 통제를 거부했고, 신경질적인 기타 소리와 도발적인 가사, 육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전통과 그에 따라오는 가치를 해체했다. 미국은 반문화와 결합한 새로운 대중문화를 냉전에서 미국이 주창하는 자유의 가치와 결부시켜 홍보했다.
공산당은 낙후한 농촌 사회를 기계가 지배하는 도시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결국에는 ‘종교와 대중문화의 자유’를 찾고자 하는 사회적 열망과 맞닥뜨렸고, 그 대결에서 패하면서 무너졌다.
종교와 대중문화는 계몽주의의 한 비전을 대표했던 공산주의라는 이념과 그 이념을 수행하는 제국을 합심해서 공격했다. 그러니 어쩌면 반대편 비전이자 이제는 ‘역사의 최종적 승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 자유주의적 계몽주의가 이 둘을 내심 곱게 보지 못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며, 자유주의자들은 이들이 이성, 합리, 인간 해방과 같은 계몽의 가치를 저버리고, 미신과 후진적 유습에 매달리고, 보편적 인권에 무관심하고 차별을 당연시한다며 비판했다. 보수주의자들이 아주 강하게 지니고 있는 이런 인식은 21세기에 미국이 중동 지역에 대대적 군사 개입을 하는 근거가 되어주기도 했다. 비서구 세계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 조금 더 비판적인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은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그렇다고 이슬람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더 나은 세계를 위한 대안적 시도라며 추켜세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냉전기 미국이 반공주의를 위해서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한 일을 비난했고, 마찬가지로 서구 세계에서 부활하는 기독교에 근거한 보수주의 운동에는 이슬람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서구 세계의 지식인들이 대체로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역시나 불편한 감정을 나타냈다는 데 있었다. 대중문화를 추종하는 이들과 종교를 추종하는 이들의 사이가 매우 안 좋았고, 현대적 대중문화가 종교로 상징되는 전통을 해체하면서 부상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러나 좌우를 막론하고 지식인들에게 68혁명 이후의 대중문화는 역시나 계몽의 이상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보수적인 이들은 대중문화가 바람직한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혼란의 에너지만 뿜어내는 반문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도르노의 계보를 이은 진보적인 이들의 관점은 더 명확했다. 사람들이 대중문화에 홀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키우지 못하고,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 관점이든 간에, 볶은 라면 같은 머리를 하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으며 마리화나를 하는 록밴드와, 그들이 가는 공연장마다 따라다니는 여성 팬들인 ‘그루피’를 인간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상태라고 보는 이들은 없었다.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대중음악과 그에 열광하는 팬덤의 존재는 현대 문명이 마침내 인간을 단순한 감각적 경험에 예속시키고, 합리성에 근거한 개인의 발전이라는 계몽의 이상을 배반하게 되었다는 증거였다. 팬덤의 어원부터 ‘광기(fanatics)’인 이유가 다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대중문화, 그리고 대중음악의 팬덤은 단순히 기성 사회에 대한 무책임한 반대만을 외치고, 번쩍이는 무대의 조명과 심장 박동을 울리는 비트만을 좇는 이들, 음악 자본이 무한한 팽창을 위해 제공하는 말초적 문화에 지성을 잃고 휘둘리는 이들이 아니었다. 냉전이 마침내 끝나가던 1980년대 말부터 월드와이드웹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990년대 초에 일군의 미디어 학자들은 대중문화 팬덤이 통념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관찰했다. 그들은 상업 자본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도 아니었고, 기성의 모든 가치에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반문화 전사들도 아니었다. 많은 경우 팬들은 자율적으로 움직였고, 일상 생활과 팬 활동 사이에서 균형을 잡거나 그 사이의 긴장을 관리하고자 계속해서 노력하는 존재들이었다. 사실 이 학자들은 자신 스스로가 전후 세대로서 어렸을 때부터 열렬한 대중문화의 팬이곤 했는데, 자신들이 직접 수행하고 관찰한 팬덤의 내적 논리를 학술적으로 해석하여 보여주고자 여러 연구를 발표하게 된 것이었다.
팬덤 연구의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는 학자는 MIT의 헨리 젠킨스였다. 그는 <텍스트 밀렵꾼>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스타트렉 팬덤이 어떤 식으로 스타트렉이라는 문화 텍스트를 소비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자신이 스타트렉 팬이기도 한 젠킨스가 말하는 요점은 명확했다. 스타트렉으로 돈을 벌 문화 자본과 전혀 무관하게, 팬들은 이미 스타트렉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탐구하면서 자율적인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 작품을 수십 번씩 돌려보면서 작품의 의미나 아주 사소한 장면까지 모두 확인하고자 했다. 즉, 작품이 공급자의 손을 떠나서 수용자와 소비자들이 전유(appropriation, 혼자 독차지하여 가지다)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그들은 팬들을 대중문화로 홀려서 조종하고 착취하는 존재로 상정된 문화 자본에 압력을 가하고,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때로는 정말로 관철시키는 ‘소비자 행동주의’를 보여주었다. 팬덤은 작품을 자신들의 뜻대로 해석하고, 반복 시청이나 기념품 수집 같은 팬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행동을 수행하고, 집단으로 모여 소통하고 행동에 나서면서 공동체를 형성해나갔다. 이 모든 활동이 물론 문화 자본이나 공급자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랬다면 그들은 팬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팬덤은 분명히 공급자들의 의도로 좌우할 수 없는 독자적인 자율성을 형성해나가면서 텍스트를 ‘밀렵’하고 있었다. 요컨대 이것은 대중문화를 매개로 한 새로운 사회 영역이자 공동체의 형성이었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런 팬덤 공동체의 형성과 그 작동이 일종의 종교 공동체와 흡사한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문화사학자이자 그 자신도 미국의 락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팬이기도 한 다니엘 카비치가 자신이 속한 팬덤을 연구하면서 펼쳐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예시로 대중음악 팬덤을 논한 그는 먼저 팬덤에 대한 이야기를 펼칠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당신은 언제 팬이 되었는가?’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이 어떤 계기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알게 되었고 그의 음악을 들었는지, 처음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흘려듣던 노래가 갑자기 어떻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라는 한 인간에 빠져들게 되면서 그의 음악을 열광적으로 듣게 되었는지. 팬이라면 누구나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팬들은 자신들이 팬으로 ‘개안’한 순간을 나누면서 팬으로서의 감정을 서로 공유하고, 그들이 같은 대상에 빠져 있는 팬이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카비치는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을 알지 못했거나 무심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자신을 팬으로서 스스로 정의하게 되는 과정은 종교와 몹시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회심’을 통해 신앙심을 회복한 미국의 기독교인들끼리의 대화는 ‘팬심’을 획득한 팬덤의 대화와 놀랍도록 같은 구조로 전개된다. 어렸을 때 예수와 교회에 무심했고, 종교에 냉소적이거나 때로 조롱까지 했던 이들이 삶의 어떠한 계기를 통해 다시 열정적인 기독교 신자로 돌아가며 회심의 순간을 겪는다. 설마 자신이 종교를 진지하게 믿겠냐고 되묻지만, 성경의 메시지와 기독교 공동체가 주는 경험은 자신의 이성을 압도하고 신자들은 자신의 삶을 다시금 종교에 헌신해야겠다는 강한 믿음을 회복하게 된다. 바로 이런 ‘자기 항복’과 ‘신앙 고백’이 대중음악에 열성적으로 호응하는 팬덤에게서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정한 가수의 팬이 된다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팬들을 이상한 이들로 간주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군가의 팬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것을 부정하려 하다가, 역시나 이미 자신이 팬이 되어 있는 상태임을 수긍하는 자기 항복을 거친다. 그리하여 언제부터 ‘회심’하고 ‘거듭남’을 겪었는지를 회상하고 공유하면서 팬들의 대화는 마치 종교 집단의 대화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팬이 되는 것은 많은 면에서 ‘종교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대중음악 스타를 향한 팬 활동은 원자적인 개인의 정체성을 뛰어넘는 집단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부여하며, 숭배의 대상인 스타와 자신의 관계에서 일종의 초월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정체성, 소속감, 초월성을 향한 꾸준한 활동을 통해서 팬들은 자신의 팬 활동에서 ‘의미’를 찾는다. 자신을 정의할 때 ‘나는 누구의 팬이다’라는 정의가 가장 앞에 오게 되고,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들과 공통의 활동을 수행하면서 집단적 소속감을 느낀다. 콘서트와 같은 순간은 마치 종교 집회와도 같은 경험을 제공해주고 일종의 몰아 상태로 팬들을 이끈다. 물론 팬 활동은 콘서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마치 종교인들이 종교 음악을 명상이나 예배 같은 상황에서만 세심하게 듣는 것처럼, 자신이 몰두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 때에 세심하게 듣는다. 가수와 관련된 기사를 스크랩하고, 사진을 모으며, 자체적으로 기념품들을 제작하여 나누고, 자신의 사적 공간에 스타를 표상하는 여러 증거(앨범, 포스터 등)를 걸어 놓으면서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들은 신도들이 신학과 교리에 대해 논쟁하듯이 아티스트의 삶과 음악에 대해 논쟁하며, 미학적 차원의 해석을 덧붙이거나 아티스트의 개인사와 음악을 연결시켜 해석의 풍부함을 더하기도 한다.
물론 바깥에서 보기에 이런 활동들은 총체적인 무의미함이며, 여가를 삶의 중심에 위치시킨 본말전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부자적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이런 활동들이야말로 의미로 충만한 활동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고, 집단적 소속감을 확인받는 경험은 인간이 원자화된 도시 사회에서, 공동체로부터 잘려나가고 집단적 프로젝트에 더는 헌신할 의무를 느끼지 못하게 된 전후 사회에서 새로운 의미의 감각을 제공해주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팬으로 다시 정의하게 된 이들은 마침내 시간과 공간의 관념마저도 팬으로서의 활동과 연계시켜서 조정하게 된다. 특정 공간에서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혹은 어떤 음악은 어떤 장소를 배경으로 쓰인 것인지 등에 대한 정보가 새롭게 입력되고, 자신 인생의 어떠한 순간에서 자신이 경배하는 음악이 발매되어 자신의 삶에 다가왔는지를 숙고하게 된다. 카비치가 인터뷰한 어떠한 스프링스틴 팬의 말마따나, “내 인생이 하나의 영화라면 스프링스틴의 음악은 그 영화의 OST”가 되는 것이다. 그의 삶에 의미와 서사, 목표를 제공하는 것은 스프링스틴이며, 일상의 다른 의미(연인이나 가족과의 사랑, 직업적인 성공) 모두에도 스프링스틴이 항상 개입하여 분리할 수 없는 총체를 이루게 된다.
물론 팬 활동의 핵심이 되는, 그리하여 의미를 제공해주는 콘서트 참석이나 음반 판매는 물론 음악 자본과 아티스트, 소비자 사이의 계약으로 구성되는, 근대의 기계론적 사회 속에서 꽃 피는 산업이다. 하지만 막상 그 속에서 꾸준히 음반을 사고, 콘서트를 계속해서 따라가는 이들은 음악 자본을 그저 도구로만 생각한다. 아티스트와 팬 사이를 매개해주고 그들이 음악의 의미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고, 때로는 방해하는 수단적 존재 정도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음악 자본이 팬덤을 이용하고 휘두른다는 종래의 통념과 다르게, 음악 자본이 아티스트와 팬덤 사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기민하게 파악하여, 그들을 역으로 자신들의 요구에 가장 잘 부응하도록 이용하는 방법론을 훈련한다. 따라서 카비치는 팬덤을 이렇게 정의한다.
“스프링스틴의 팬이 되려면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팬이 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취향을 습득하는 문제가 아니다. 스프링스틴의 작업을 통해서 그와 복잡한 관계를 발전시키고, 타인의 경험에 자기 자신을 극적으로 개방하는 일이다. 팬들은 종종 자신이 팬이 된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자신들의 이야기에서 팬이 되는 과정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극적인 여정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팬이 되는 여정이 무지와 환멸이 지배하는 “옛” 관점에서 활기와 통찰로 가득 찬 “새” 관점으로의 지속적이고 심오한 전환임을 타나낸다.
결국 팬들의 감정은 변할 수 있지만, 스프링스틴과의 연결은 그가 각 팬의 일부가 됨을 의미하며, 그들이 계속해서 회귀할 수 있는 지속적인 현존이다. 전반적으로, 팬덤은 개인이 ‘소유하거나’ ‘행하는’ 특정한 요소가 아니다. 팬덤은 존재의 과정이자 무언가가 ‘되는’ 방법이다.”
- 다니엘 카비치, Tramps Like Us: Music & Meaning Among Springsteen Fans.
따라서 팬이 되면서 정체성의 변화를 겪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가치 평가의 기준, 삶의 목적성 등 모든 측면에서의 변화가 따라오게 된다. 이런 변화는 거칠게 말하자면 근대 국가가 여러 제도와 장치가 제공해주는 통치성을 통해 사람들을 훈련하여 창출해낸 근대적 주체(modern subjectivity)를 해체하고, 대중음악과 가수를 삶의 중심에 두는 탈근대적 주체(postmodern subjectivity)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비치의 관점을 받아들이면 지난 글에서 제기된 질문에 손쉬운 답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전후 소비 사회에서 전통의 회복을 주창하는 종교와 전통의 해체를 추구하는 대중문화가 왜 동시에 발흥한 것인가?” 사실 이 문제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전통의 회복이나 해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중요했던 것은, 종교와 대중문화가 모두 전후 대중 사회에서 상실된 것으로 간주되는 삶의 의미와 목적성, 초월성과 연결의 감각을 제공해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종교와 대중문화가 서로 격렬히 충돌했던 것도 이런 관점에서는 새롭게 보인다. 요컨대 종교와 대중문화는 ‘의미를 찾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신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치열하게 다투는 경쟁자들이었다. 영혼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존재는 예수, 알라, 크리슈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마이클 잭슨, 본 조비, 건스앤로지스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그 둘의 양립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대립이나 양립보다 중요한 것은, 전후 소비 사회에서 의미의 결여와 존재의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그를 해소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각종 대안책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었다. 이는 계몽의 이상을 강하게 품고 있는 지식인들이 종교와 대중음악에 무언가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했다. 합리성과 개인성이라는 감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월성과 집단성을 향한 영혼의 불길은 계몽주의, 특히 자유주의적 계몽주의가 그토록 퇴치하고자 했던 과거의 망령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대중음악이라는 미래의 괴물까지 가세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그 이전의 글에서 썼듯, 이 미래의 괴물은 냉전이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갈수록 힘을 키우고 있었다. 냉전이라는 계몽주의 최후의 대전이 끝나면서 시작된 전세계적인 의미의 상실, 정보통신 기술과 결합하여 한층 더 변화에 가속도가 붙은 글로벌 경제, (서구 사회에서) 새로운 청년층 사이에서는 갈수록 매력을 일어가는 종교와 전통, 국민 정체성이나 계급 정체성과 같은 근대적 정체성의 대대적 해체. 이 모든 흐름은 근대성이 만들어낸 인간의 불안과 의미의 위기를 증폭했다. 전후 사회에서 본격화된 새로운 의미의 모색에 더 불이 붙을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정신없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의미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 중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종교와 대중문화였다. 종교가 고리타분하고 자유를 지나치게 억제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청년층에게 사실상 '의미의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남은 선택지는 그런 의미에서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대중문화였다.
따라서 우리는 K-POP의 지구적 성공을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K-POP의 지구적 성공은 지구적 차원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의미의 위기에서 K-POP이 가장 매력적인 대안을 제공하는 대중문화기에 가능했다. 둘째, K-POP에 더욱 열렬히 몰두하고, 삶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일수록, 삶에서 여타 의미의 원천이 더 많이 결핍된 사람, 그리하여 의미의 위기를 더 심하게 겪고 있는 사람들일 개연성이 크다. 이 두 차원에서 보자면, K-POP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신흥 종교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K-POP은 대체 어떻게 의미를 제공해주기에 사람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교리와 의식, 상징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영혼에 불을 붙인다. K-POP의 교리는 무엇이고 신자들은 어떤 전례를 집전하는가? 그 의식을 통해 사람들이 얻는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