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탐방 - 발리 (2)

남양탐방 - 발리 (2)

발리의 바즈라 산디 독립기념관 탐방.

임명묵

사실 셋째 날도 딱히 어딜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소박한 짱구 해변 산책.

지붕이나 가옥이 동북아와 같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했다.

친구들과 함께 맥주 한 잔 하면서 파도를 바라보았는데 날씨가 확실히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흔히 발리하면 기대하는 에메랄드 바다는 전혀 아니었지만 이런 우중충한 바다도 꽤나 운치가 있었다.

화장실에 가니 이런 신상이...

마트에서 발견한 오레오 블랙핑크 맛과 레드벨벳 맛. 레드벨벳은 그 레드벨벳은 아니지만... 나름 트와이스맛이 있으면 더욱 운치가 살지 않았을까.

이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탐방을 시작했다. 장소는 바로 바즈라 산디(Bajra Sandhi) 기념관. 덴파사르 시내 동쪽 정부청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이 엄청나게 크진 않아도 앙코르 와트, 보로부두르처럼 상당히 화려하고 웅장하다. 이 건물의 이름인 '바즈라'는 그 유명한 금강저를 뜻하는데, 금강저 모양으로 지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건물은 1987년에 착공하여 2004년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금강저.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기념관 앞에는 발리인들의 투쟁을 기리는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저 방패가 인상적이라서 찍었다.

인도네시아 국장,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저 방패는 판차실라를 뜻하는데, 인도네시아어로 다섯 가지 원칙을 뜻한다. 이는 인도네시아 독립 지도자였던 수카르노가 세웠던 국가의 기본 이념인데, 각각 다음을 뜻한다.

  1. 일신교 신앙
  2. 정의와 문화적인 인간성
  3. 인도네시아의 단결
  4. 합의제와 대의제를 통한 민주주의의 지혜로운 길잡이
  5. 인도네시아 국민에 대한 사회 정의

역시 이념 자체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판차실라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실제 적용이다. 사실 판차실라의 뿌리에는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독일 사상이 있었고, 또 일본의 인도네시아 점령기에 일본에서 만든 '국체론'의 강한 영향도 받았다. 수카르노는 판차실라를 자신의 평등주의와 사회주의 이상과 결부시켜서 인도네시아에 부과하고자 했으나, 이후 수하르토 정권에서는 수카르노의 판차실라를 자신의 우익 권위주의에 맞게,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재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판차실라 자체에 대한 합의는 수하르토 정권이 사라진 지금도 여전히 굳건하다.

또 재밌는 건 1번의 일신교 신앙이다. 무슬림이 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여느 신생 무슬림 국가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역할을 상당히 중시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수카르노의 세속주의와 인도네시아의 다양성이 고려되어 '일신교'로 타협을 보게 되었다. 발리의 힌두교는 이 과정에서 판차실라에 맞게끔 일신교적 성향을 갖도록 전환을 거쳤다. 내가 발리 사람들에게 힌두교에 대해 물어볼 때도 다들 '우리 힌두교는 하나의 근원을 중시한다'라고 강조했는데 그 근원이 이 판차실라였다.

렌즈를 조금 닦았어야 하나..

뭔가 이런 석상들이 꽤 보였는데 인도네시아나 힌두 문명에 익숙치 않아서 잘 알아보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관내에 들어가면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시아인들의 항전을 그린 여러 그림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두번째 그림에서 깃발을 들고 있는 이는 발리의 독립 영웅이자 순교자인 구스티 응우라 라이. 그가 지휘하는 독립군은 마르가 전투에서 네덜란드군과 맞서 싸웠으나 전멸했고, 인도네시아와 발리에서는 여전히 그를 기리고 있다.

열대의 숲이라는 게 확 들어온다.

밑에 러시아인들 관광객들이 종종 보였다.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연인끼리 너무 단란한 시간을 보내길래 끼어드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길래 넘어갔다..

기념관 2층에 올라가면 발리의 역사를 표현한 33개의 디오라마가 있는데 하나하나 아기자기하게 잘 표현되어서 보는 맛이 났다. 이것은 발리에 계단식 농법과 관개 시스템이 도입되었던 것을 보여준다.

일본의 점령기도 하나 있고.

거의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응루라 라이의 마르가 전투.

위에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는데 이 디자인이 꽤 신기하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보이는 덴파사르 시내 전경. 날이 여전히 우중충하다. 그러나 우중충한 날씨가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어서 그나마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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