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탐방 - 치앙마이 (1)

남양탐방 - 치앙마이 (1)

섬에서 산으로

임명묵

발리에서 볼 일을 마치고, 마침 방콕에 방문한 지인이 있어서 잠깐 방콕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시간을 같이 보냈었다. 그러나 이번에 태국을 방문하는 목적은 방콕이 아니라 거기서 훨씬 더 북쪽에 있는 태국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였다.

치앙마이 같은 경우는 사실 내가 태국 여행 계획을 짤 때는 언제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데 굳이 갈 이유는 못 찾는 도시'로 분류되고는 했었다. 개인적으로 관심 있어 하는 도시는 거의 대부분 방콕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 지역이나 아예 동북부 이싼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콰이강의 다리가 있는 깐짜나부리나, 크메르 제국의 유산이 남아 있는 부리람, 혹은 방콕에서 1시간 거리로 떨어져 있는 아유타야 같은 곳들. 치앙마이는 명성은 많이 들어봤는데, 태국의 가장 북쪽에 너무 홀로 떨어져 있어서, 동남아시아에 이제 막 관심이 생기는 나로서는 굳이 방문할 이유를 아직은 못 만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발리 여행을 떠나기 전인 12월 말에, 사촌형과 형수님이 우리 집을 찾아왔었는데 이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저희 1월부터 4월까지 3개월 동안 치앙마이에서 3개월 동안 살려구요."

그 말을 듣고 치앙마이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발리에서 오는 길에, 치앙마이 들렸다가 사촌형도 뵙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수완나품에서 치앙마이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기체가 작아서 그런지 1시간 반짜리 비행이었는데도 이리저리 흔들려서 아주 무서웠다..

치앙마이의 양대 중심가는 북서쪽의 님만해민(님만)과 옛 치앙마이 성곽 안쪽인 올드타운이 있다. 사촌형이 3개월 임대한 집이 님만해민에 있다길래 나도 님만에 3박 4일로 숙소를 예약했다. 사촌형이 공항에 마중나와서 택시를 잡아서 탔는데,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쓰는 그랩이 아니었다. 대신 이 형이 쓰는 어플은 내가 4년 전에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을 할 때 썼었던 러시아 차량공유 어플인 막심 아닌가? 놀라서 바로 물었다.

"아니 막심 이게 태국에도 있어요?"

"어 그랩보다 막심이나 인드라이브 쓰는 게 거의 반값이라 나는 무조건 이거 쓰는데 왜?"

"이거 저 4년 전에 러시아에서 타던 건데 이게 왜 여깄지?"

나중에 알아보니 2020년대 들어 막심이 공격적으로 동남아시아 진출을 했었고, 그래서 2022년부터 치앙마이를 태국의 거점으로 삼아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아마 러시아 관광객들이 상당해서 그 수요를 바탕으로 확장을 한 것 아닌가 싶다. 참고로 막심은 카자흐스탄 인근에 있는 쿠르간에서 사업을 시작해서, 러시아의 카카오택시격인 얀덱스 택시 바로 다음 가는 위상으로서 저가 차량공유 서비스의 대표 주자를 차지하고 있다.

발리에서 와서 방콕에 짧게 머무르는 동안 세탁을 할 수 없었고, 늘 여행할 때는 3일치 옷만 준비하는 나는 세탁이 매우 급한 상황이었다. 숙소에 세탁기가 없었기 때문에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사촌형 숙소 근처의 코인 세탁방에 갔었다. 치앙마이가 신기한 건 QR 결제 시스템이 굉장히 잘 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이게 나중에 돌이켜보니 방콕이나 파타야처럼 관광객 뜨내기가 많은 곳이 오히려 QR이 안 되어 있고, 현지인들 위주로는 QR 결제를 비롯한 핀테크가 굉장히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도 토스 어플을 통해서 돈을 충전하면 인터넷이 연결되는 한 매우 편하게 QR로 해외결제를 할 수 있었다. 환전을 안 해도 되고 굳이 비싼 수수료 들여가며 ATM 쓸 필요가 없는 것이 너무 편했다.

님만해민은 신기하게도 방콕과 전혀 달리 한국의 깔끔한 지방 신도시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정말 한국 어딜 가나 있을 법한 그런 한적한 도로들에 나름 인스타 감성에 맞게 리모델링한 가게들이 보이니, 아예 다른 분위기였던 발리나 방콕과는 달리 매우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은 님만해민은 오히려 너무 한국하고 비슷해서 잘 선호하지 않는 편이고, 관광지 감성이 가득한 올드타운에서 주로 머무르는 편이라고 한다. 님만해민은 여기서 꽤 오래 살아본 장기 체류자들, 혹은 정말로 치앙마이에 사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곳에 가깝다고 들었다. 사실 동네 깔끔하고 괜찮은 가게들 많은 곳이 핫플레이스일 수밖에 없지 싶었다. '태국 감성'이라는 곳은 한국인이 몰리고 '한국 감성'인 곳은 태국인들이 몰린다.

중간에 본 와비사비 카페.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구글에 검색해보시길..

정말 경기도 2기 신도시 길거리 어딜 가나 있을 법한 카페들과 이 전반적인 풍경을 보니 너무나도 인상적이면서도 또 푸근한 것이 기분이 묘했다.

물론 이런 간판을 보면 여기가 한국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된다. '기름밥'이라는 말이 우즈베키스탄의 볶음밥 '쁠롭(필라프)'을 고려인들이 말할 때 쓰는 말인데 구글번역기에서 그쪽 말로 번역해줬나..

사촌형 및 형수님과 치앙마이에 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생태에 관한 수시간에 걸친 토론을 하다가 치앙마이에서 본 겸 회포를 풀기 위해서 알아봐 둔 술집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와중에 '원 님만'이라는 그럴싸한 쇼핑몰을 지나쳤는데, 태국 가수가 방문을 해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도시 젊은 사람들이 다들 모여서 공연을 열심히 감상하고 있었다.

원 님만에서 나와서 치앙마이의 동대구 신세계 백화점격인 '마야 몰'로 향하는 길에서 발견한 대마집. 대마 합법화 이후에 방콕을 방문해본 적이 없는 사촌형 내외는 "아우 여기 대마 합법화된 다음엔 저런 게 너무 많이 생겼어~"라고 하셨는데, 여기 오기 전에 방콕을 들렸던 나로서는 오히려 생경했다. 방콕에서는 대마집이 번화가 블록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로 많았는데 치앙마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랄까 이런 게 지역 간 문화 차이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님만해민의 초입에 위치한 도시의 가장 중요한 상업 건물인 마야몰. 한국에 가져다 놔도 위화감이 없을 깔끔하고 편리한 시설이었다. 일단 밥은 여기 있는 푸드코트에서 가볍게 먹고 그 뒤에 맥주집으로 이동하는 계획이었다.

맞은 편에 있는 그럴싸한 태국 식당.

마야몰 앞에는 태국의 여느 백화점이나 호텔처럼 신상을 모신 곳이 있었는데 여기는 힌두교의 가네샤가 모셔져 있었다. 불교를 믿는 태국인들이지만 힌두교 신들을 숭배하는 데도 그다지 거부감은 없는 모습을 그동안 자주 봤었다. 사진을 찍고 나니까 그제서야 저 길 건너편에 위화감 있는 폰트로 '한식바베큐'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치앙마이의 대표 음식 카오소이(Khao Soi),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푸드코트에서 먹은 음식은 카오소이였는데 너무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을 찍지 못해서 위키백과 사진으로 대체.. 푸드코트는 방콕 터미널21과 크게 구성이 다르지 않아서 슥 구경하고 있었는데, 거기서는 보지 못했던 카레 국수 같은 게 보이길래 그걸로 주문했다. 맛도 정말 카레 국수였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게 치앙마이를 비롯한 태국 북부, 나아가 운남성에 접경한 라오스와 미얀마 북부에서도 먹는 이 지역의 대표 음식이라고 했다. 먹고 나서 다음 날 거리를 돌아보니 정말 어디서나 팔고 있긴 했다. 맛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카레에 코코넛밀크 같은 것을 타서 더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국수였는데 정말 맛있었다. 많은 집에서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양파와 짠지 같은 걸 줬는데 이것도 국수와 궁합이 아주 좋았다.

푸드코트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포차'.

이 옆 코너는 일식이었는데, 발리 공항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 지역에서는 한식과 일식이 세트로 다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메뉴판에 써 있는 친절한 한국어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함인가, 현지인을 위함인가?

밥을 먹고 마야 몰을 나오는 길에 발견한 '핫도그'집. 원래 한국에서 핫도그라 알려진 그 튀긴 빵은 콘도그에 더 가깝다고 하지만 한국 문화가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이제는 콘도그를 핫도그라 부르는 언어 찬탈의 마법이 일어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술집으로 가는 길의 건물인데 도쿄에서 본 일본식 맨션의 느낌이 잔뜩 나서 참 신기했다.

이곳은 안주를 시키는 것과 별개로 냉장고에서 원하는 꼬치를 선택하면 꼬치를 향신료를 뿌려서 맛깔지게 구워주는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맥주 안주로 아주 제격이었다. 사촌형과는 이렇게 따로 뵙는 것이 사실상 처음이라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치앙마이의 밤을 보냈다.

술 메뉴판에 당당히 위치한 Soju Chumchurum과 Jinro Tok tok에 몹시 자랑스러워졌다. 진로톡톡은 아마 캔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 1바트에 40원을 잡으면 대충 2800원쯤 하는 것이고, 처음처럼은 7200원쯤 하는 것이니 한국이랑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가격 차이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이 이것을 사먹는다는 데서 한국 문화의 위대한 승리를 인도네시아 발리에 이어서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발리 택시기사와 술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여기 사람들은 주로 과일소주를 즐겨 먹는다고(이건 모스크바에서도 그랬다) 하며 자기는 복숭아맛을 제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길래 "아아 한국인들은 과일맛 말고 오리지널로 맥주랑 타먹는 걸 제일 좋아해요"라고 하니 자기들도 타먹기도 한다고. 그러면 당신들은 무엇에 타먹느냐, 라고 물으니

"우린 소주랑 야쿨을 타먹는다."

오, 이것은 인도네시아 전통 음료와 한국 소주의 만남인가? 하면서 잔뜩 기대했다. 혹시 재미난 거면 나도 한 번 따라해봐야지. 그래서 "발리 전통주로 아락은 내가 전날 사서 먹어봤는데 그건 처음 듣는다 야쿨이 뭐냐?"

하니 구글에서 무언가를 검색해서 나한테 보여주는데,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야쿠르트'였다..

아, 이 동네는 과일소주가 그냥 표준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대화.

향신료가 뿌려진 맛깔진 꼬치구이의 모습. 이걸 보니 이거 때문에라도 치앙마이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도착한 날에는 타국에서 친척을 만나 회포를 풀어야 했으니, 본격적인 치앙마이 역사 탐방은 다음날로 미루었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2건)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유료구독을 하면 마음껏 편히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하시면 갯수 제한 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