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변화와 갈등의 시대

바야흐로 ‘혐오’ 혹은 ‘갈등’이 세상을 읽는 키워드가 되었다. 2022년의 대통령 선거는 한국 사회를 수놓는 온갖 갈등이 집약되어서 폭발한 사건이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로 압축되던 일반적인 세대 갈등은 이제 20대를 비롯한 청년층, 40대를 비롯한 중년층,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서로를 비난하고,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한 각양각색의 표현을 창조한다. 젠더 갈등은 2015-2016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하여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판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강력한 현상으로 위상을 확고히 했다. 지역 갈등은 과거 영호남 갈등에서 더욱 확장되어 모든 사람들이 한국을 수많은 소지역으로 쪼개 비방할 이유를 찾아내는 단계에 진입했다. 물론 이런 갈등들은 ‘전통적 시야’에서 포착이 되는 수준의 갈등이다. 스포츠, 대중음악, 드라마 등 인간이 관여하는 모든 영역에서 모든 종류의 적대 관계를 관찰할 수 있다. 젠더 갈등의 온상이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만 보아도 그렇다. 과거에는 이런 문화 콘텐츠나 사회 현상이 이정도로 격렬한 갈등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가 갈등이 없는 유토피아였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석가모니식 해탈을 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갈등과 혐오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지금의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은 모두 이전 시대에서부터 누적되어 온 갈등들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한편 과거에는 강압적 국가와 투쟁적 사회의 강한 대립 구도가 있었다.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제국들의 총력전과 농촌 사회의 신분 질서 변동에 따른 다툼은 지금의 갈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유혈 갈등이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모든 것이 훨씬 더 평화로워진 지금에 와서 갈등, 혐오, 분열을 이야기하는가?

‘과거’의 갈등이 현대보다 더 격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과거를 더 안정적인 시대로 생각하곤 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미화가 아니라, 나름의 근거가 있는 일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혼란과 안정을 느끼는 척도가 갈등의 크기나 격렬함에 달려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핵심은 갈등의 구도다. 근대 대중 사회나 전근대 전통 사회의 갈등은 더 잔인했을지는 몰라도, 구도 자체가 매우 단순했다. 전통 사회는 수천년, 수백년을 이어온 전통적 생활 양식을 인간 삶의 유일한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모두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역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종교와 의례는 삶의 의미를 제공한다. 여성이나 평민, 노예와 같은 이들은 이 질서에서 억압 받으며 때때로 그에 대한 반발이 폭발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사회 구조는 몹시 안정적이었다. 이 시기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갈등은 가혹한 자연과의 투쟁과 당장의 생계, 그리고 국가 간의 전쟁이나 국가의 붕괴였다. 하지만 이런 갈등들조차 매우 익숙한 종류의 것들이었고, 종교는 급격한 재난에 대한 심리적 위안을 줄 수가 있었다.

전통 사회는 산업화, 도시화로 대변되는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급속히 해체되었다. 마르크스는 이런 상황을 두고 “단단한 모든 것은 공기 중에 녹는다”라고 표현했다. 근대는 새로운 종류의 갈등을 야기했다. 노동자와 농민, 부르주아 등 새로운 사회 집단과 계급의 갈등, 자유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이라는 이념 갈등이 있었다. 도시 경제에서 여성의 참여는 그들의 정치, 사회적 권리에 대한 열망을 깨웠고 이는 새로운 종류의 성별 갈등을 만들었다. 유럽 제국이 전세계로 팽창하면서 제국과 식민지의 갈등도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새로운 사회 갈등과 반목의 출현을 보고 당황했으며, 그들은 각자의 해법을 모색하고 실제 사회에 적용하고자 투쟁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갈등 구도 자체가 과히 복잡해진 것은 아니었다. 첫째로 인간 삶의 일상적인 측면에서 전통적 삶의 방식과 가치 체계는 대부분 유지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와 지역 사회에 의미를 두고 있었고,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살아갔다. 둘째로 근대의 사회 갈등이 새롭게 등장하긴 했어도 그 과정에서 전통적 사회 갈등은 흡수되어 시대에 맞게 재편되었고, 새로운 갈등의 출현은 억압되었다. 특히 양차세계대전과 냉전으로 격렬해진 국가와 이념 간의 갈등은 국가와 사회를 외부에 일치단결하여 대응하는 체제로 조직하게 강제했고, 이런 분위기에서 전열을 흩트리는 행위는 용납되기 어려웠다. 서구 세계에서는 1950년대가 되었을 때는 근대화로 폭발한 갈등이 기술적 발전과 정치적 투쟁, 사회 제도상의 혁신과 함께 사그라들 수 있었다. 사회에 보편적으로 분배된 부와 꺠지지 않을 것 같은 안정성 덕택에, 많은 서구인들은 이 시기를 역사의 황금기로 기억한다. 전통 사회와 산업시대 대중 사회를 막론하고 억압을 통해 만들어낸 갈등의 일원화는 안정을 공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의 역사는 전통 사회와 근대 사회가 유지해오던 안정이 해체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근대화에 따른 예상치 못한 파급 효과가 기존의 위계질서와 가치 체계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억압받던 이들의 자유를 향한 요구, 기업 간 경쟁에 따른 이윤 추구 동기, 한 초강대국의 갑작스러운 붕괴, 혹은 단순한 유희 추구 과정 등 다양한 양상이 벌어졌는데 종국적으로는 모두 같은 결과를 만들고 있었다. 그 중에서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세 가지 힘은 특기할만 하다.

첫 번째는 일상 생활을 감싸던 전통의 권위와 그 권위에 따른 억압에 도전한 68혁명이었다. 68혁명으로 성적 자유나 다양한 문화적 자유가 꽃피웠고 청년 문화가 만개했지만, 전통이 삶의 형태를 일원화하던 옛 세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는 세계화였다. 대공황과 제2차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등장한 국가 관리 경제는 자유로운 자본, 노동, 기술, 정보가 이동하는 세계화 경제로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지리적 집적은 해체되고, 견고한 대형 조직에 의존하던 제조업 기업은 ‘유연 생산’이니 ‘적시 생산’이니 하는 새로운 주제에 적응해야 했다. 새로운 시대의 세계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길은 생산 지역을 노동력이 더 저렴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이 유사한 방식으로 중산층에 올라가 ‘표준적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대규모 제조업이 해체되고, 제조업에 의존하던 지역 경제가 마비되었다. 농업과 함께 시작된 정착 생활에 익숙해진 인류는 이제 기회를 찾기 위해 유랑민이 되거나, 대규모 공장이 남긴 폐허와 잔해 위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노동 조합과 그에 기반한 지역 사회라는 20세기 포디즘 대중사회의 근간이 무너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화였다. 전국 단위 신문, 라디오와 TV는 농촌 사회에서 새로운 도시 사회의 대중을 형성한 사람들의 여론을 조형하는 핵심적인 도구였다. 모든 사람들은 같은 미디어를 통해 같은 콘텐츠를 보았고 이러한 일체감은 공론의 기반을 형성했다. 그러니 정치적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소한 이견으로 다투다 합의를 도출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모두가 각자의 미디어 채널을 소유하면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발산할 수 있게 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와 콘텐츠를 취사선택해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적대했다. 미디어 경로가 유사한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구성하여 서로의 의견을 강화시켜주었으며,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보지 않게 되었다. 대중사회(mass society)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소수의 부족으로, 수만 갈래로 쪼개졌고, 그 부족 간의 존재론적 투쟁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 현대 사회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혼란은 전통의 권위, 안정적 물적 기반, 근대적 ‘국민 문화’가 모두 붕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대체로 서구 사회가 겪었던 이런 경로를 훨씬 더 집약적인 수준에서 경험했다. 한국 전쟁은 17세기 이래로 형성되어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던 한국 사회를 깬 날카로운 정이었다. 그 이후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세계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초고속 산업화를 겪으며, 한국 사회는 성리학이 지배하는 전통 사회에서 대공장과 노동조합을 갖춘 산업 사회로 진입했다. 이런 변화는 본래 엄청난 수준의 갈등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한국에도 유럽에서 나타난 농민 문제, 도시 노동자 문제, 여성 문제, 빈민 문제 등이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폭발했다. 하지만 냉전 시대 준전시 태세와도 같은 북한과의 대치와 경제 발전을 위한 전국민적 동원 체제는 강력한 군부 정권이 다양한 갈등을 억누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경제 발전의 결과로 형성된 중산층의 요구는 군부 정권이 온전히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것이었으며, 냉전의 해체로 군부 정권의 억압은 더는 정당화될 수도 없었다.

1987년에 등장한 6공화국 시대에 갈등은 더욱 다원화되었다. 남북한의 대치, 군부와 민주화 세력의 갈등같이 단순했던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었지만, 그 외에도 지역 문제, 성별 문제, 개인주의 등 새로운 문제들이 추가되었다. 개발 시기 한국은 약 30여 년 만에 서구 사회가 2세기에 걸쳐 이룬 근대화를 따라잡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이제 한국 사회는 68혁명, 세계화, 정보화를 받아들여 기존 사회 질서를 해체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대략 1968년 이래로 서구 사회가 30여 년 동안 겪은 변화를 한국은 이번에도 집약적으로 돌파할 것이었다. 1990년대의 10년 만에 한국에서는 ‘한국의 68세대’라고 할 수 있는 X세대의 출현, 중국의 개방에 따른 세계화 경제의 참여,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 같은 일 순식간에 벌어졌다. X세대가 주축이 되어 인터넷을 활용하여 승리하고 집권 후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 노무현 참여정부는 한국이 이제 여느 서구 사회를 따라잡는 수준을 넘어서 그들보다 더욱 앞선 단계에서, 더욱 급진적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는 신호탄과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포스트모던’ 격변의 시대에 태어난 1990년대생들은, 앞선 산업 시대의 인간형과는 또 다른 종류의 세대로 성장했다.

90년대생들과 그 이후 출생자들이 접하게 된 새로운 세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하여 경제적 계층 격차가 급격하게 커지는 가운데, SNS를 통하여 그 모든 격차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게 된 세상”. 이는 90년대생들이 누리게 된 풍족한 물질적 조건과는 별개로 그들의 심리에 엄청난 수준의 압박을 주었다. 이런 압박으로 형성된 강력한 계급 정서, 상향욕, 전복 정서는 각종 K-컨텐츠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가 되었다. 소속감, 집단행동, 의미 있는 삶을 향한 욕구는 각종 팬덤과 커뮤니티의 깃발 아래 뭉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으며, 그들은 정보화로 인해 발생한 미디어 파편화, 그에 따른 수없이 많은 부족들에 속하게 되면서 존재론적인 필사의 전쟁을 이어갔다. 극도로 보수적인 유교 사회에서 갑작스럽게 자유로운 성적 개방 사회로 이행하면서 발생한 남녀 관계의 급격한 변화는 구성원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었고, 이렇게 발생한 성별 갈등은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로 옮겨붙으면서 젠더 갈등을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은 더는 찾지 못하게 된 전통적 의미(종교, 가족, 일터, 지역 사회) 대신에 이런 새로운 집단행동 속에서 의미를 발굴하게 되었고, 이는 파편화된 부족 갈등이 더욱 파편화되고 더욱 격렬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일종의 ‘바닷물 마시기’인 셈이다.

종잡을 수 없는 90년대생들의 성향을 정리할 수 있는 말은 그렇기 때문에 ‘탈가치’인 것으로 보인다.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도 있는 가치 지향적인 삶은 새로운 세대가 겪은 심리적 아노미 속에서 붕괴했다. 전통적 삶을 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지만 전통적 삶이 제공하던 안정성과 의미는 사라졌다. 대중 사회와 국민 문화는 이제 누구도 찾지 않지만 사람들은 국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여전히 그리워한다. 새로운 정보 사회는 놀랍도록 재밌는 몰입감을 제공해주지만 그에 따른 심리적 스트레스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경제적 계층화와 그 흐름에서 점차 뒤쳐지고 있다는 강한 패배주의는 자아에 대해 몹시 방어적인 태도를 장착하게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가족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가장 기본적 가치마저 추구하지 않게 된 상황이다. 현재의 청년층과 그 위 기성세대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가치 지향적 세대가 탈가치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며 탈가치적 삶을 바람직하지 못한, 공허하고 무의미한 삶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가치 지향적 세대는 탈가치적인 청년 세대에게 기존의 가치를 따르라고 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보라고 이야기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류 문명이 겪은 변화로 인하여 사실 그런 삶을 추구하는 일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가족의 형성과 부양, 일터에서 자신의 성장 같은 건설적이고 긍정적 가치 대신에 이들을 지배하는 것은 ‘지위의 사다리’와 ‘감각의 홍수’이다.

2010년대가 한국에서 이러한 본격적인 포스트모던 세대가 출현한 시대였다면, 2020년대는 한국의 변화가 글로벌로 확산되는 시대가 된 듯하다. 판데믹과 그에 대응한 락다운은 전세계 사람들을 온라인 세계로 끌어들였으며, 이미 온라인 세계에 최적화된 문화 문법을 창조한 한국 문화에 이끌리게 만들었다. 한류는 인터넷과 함께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었지만 판데믹은 이를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국 대중문화는 탈가치적 삶과 갈등, 혐오, 분노를 실어나르는 채널로서, 사람들을 한국에서는 이미 펼쳐진 새로운 시대로 인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0년대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갈등이 본격적인 ‘세계관 전쟁’에 진입했음을 알려주고 있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한국이 경험하고 있는 갈등은 정도는 약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그중에서도 전통의 빠른 해체를 경험한 서구 사회와 동아시아 사회가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 이란과 같은 국가들은 전통적 가치와 강력한 국가 권력을 바탕으로 1968년 이래 서구에서 시작된 거대한 해체를 수습하고, ‘지킬 가치를 지켜 국민들에게 보급한다’는 옛 시대 국가들의 과제를 여전히 수행할 것을 천명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볼 때는 푸틴이 서구 사회에서 당연시된 허무주의와 새로운 문화적 경향의 유입을 차단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를 지니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세계관의 투쟁은 비단 서방 진영과 반서방 진영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 사회, 한국 사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2018년에 세계를 휩쓸었던 조던 피터슨 현상, 대안 우파의 약진 등은 대표적인 일이다. 피터슨 본인이 말한 것처럼 현대의 혼란에 대한 ‘해독제’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해독제를 전통과 종교라고 주장하는 바, 그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서방 세계 안에서는 거대한 문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뿐 아니라 세계 사회가 겪고 있는 혐오, 갈등, 혼란을 해소할 수 있을까? 이 현상들의 원인을 짚어보면, 거대한 역사적 힘에 근거하기 때문에 해소는 극히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해소나 해독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도 질문해봐야 한다. 정보 사회가 불러온 격변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의 전환,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전환만큼이나 심대한 변화다. 모두 이전 시대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반발이 있었으나 결국에 비정상과 이상 상태는 새로운 정상 상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추구하는 긍정적 가치를 사회에 복원하고 싶다면, 아마 두 가지에 집중하는 게 옳을 것이다. 갈등과 반목을 야기한 현대사회의 거대한 해체는 가장 크게는 전통적 가치의 상실과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 및 고착화로 인해 벌어졌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출생한 한국인들이 태어나자마자 주어진 세계의 문법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결국에 사람들의 에너지를 ‘긍정적’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위의 두 가지 문제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일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전통적 가치와 의미 체계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불평등의 고착화에 따른 좌절을 깰 수 있도록 새로운 성장과 상향 이동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알던 사회’를 최소한이라도 유지하고 싶다면 이러한 질문을 피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모 포럼 강연을 준비할 때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