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후의 모든 탈소비에트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은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첫째, 갑작스러운 독립에 따른 문제가 많았다. 우즈베키스탄은 거대한 소련 체제 속에서 면화를 공급하고 그 대가로 자본재나 소비재를 받아오는 농업에 특화된 경제를 지니고 있었다. 이제 중앙 정부의 보조금이 사라진 상황에서, 자본재, 소비재는 물론이고 식량이나 에너지를 해결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사유재산이 도입되고 국제무역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소련 체제에서 70년 동안 형성해온 경제 관계를 대체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오랜 목화 농업은 우즈베키스탄의 토양과 수자원 문제를 악화시켰고, 우즈베키스탄 목화의 품질은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당장 갖추기 어려웠다. 요컨대 우즈베키스탄은 저품질의 면화를 모스크바에 공급해 저품질의 공산품을 받아오며 경제를 운영했는데, 이제는 저품질의 면화를 사줄 곳도 마땅치 않고 공산품을 아무리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호의에 따라서 주는 곳도 사라진 셈이 되었다.
국가 운영을 러시아인 엘리트들에게 맡긴 상황에서 벌어진 혼란함도 문제가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공간 구조는 많은 식민 사회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타슈켄트를 비롯한 현대적 도시에는 러시아인을 비롯하여 여러 민족들이 사는 코스모폴리턴한 구역이 있고, 그 공간을 둘러싼 현지 농민들의 땅이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통상적인 우즈벡인보다 더 잘 살았고,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그들이 실질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의 행정 기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 입장에서는 우즈벡어를 한 마디도 모르고 살아도, 러시아어로만 살아도 무방했던 소련 시절의 타슈켄트와, 우즈벡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신생 독립국의 수도인 타슈켄트가 같을 수가 없었다.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러시아인 인구가 유출되면서 우즈벡인 엘리트들이 그 자리를 대체해야 했는데, 장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것이었지만 당장에는 그 손실을 메우기 어려웠다.
둘째로 지리적인 문제가 있었다. 소련 시절 한 나라 안의 행정 구역이었던 곳들이 이제는 국경이 되었고, 근대 국가의 국경 및 주민 통제에 따른 복잡한 절차가 생겨났다. 행정 경계를 넘어서 생활하던 유목민들의 이동 통로는 단숨에 막혔다. 대다수 주민들에게 더 심각한 것은 상품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데 갑작스럽게 장벽이 생기는 것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과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는 모두 내륙국이다. 즉 우즈베키스탄이 국제 무역의 대다수를 처리하는 바다의 항구를 통해서 물건을 사고 팔려면 다른 내륙국의 국경을 한 번 더 넘어야만 했다. 이는 우즈벡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여러 상품을 구하고, 또 우즈벡 상품을 판매하여 외화를 벌어오는 데 심각한 경쟁력 상실을 초래했다.